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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 4월 18일 일요일 저년 7시30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실로 4년만이다. 1999년에 시작한 이후 2017년을 마지막으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올 4월 6일부터 25일까지 다시 개최되면서 그 일환으로 18일 저녁 7시30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관람했다.
원어를 알고 원 가사로 독일 현지에서 자주 다양한 가수와 극장에서 접했으며 모 대학의 연기예술뮤지컬과의 일원으로 6년간 있으면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러닝타임 3시간에 육박하는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같은 걸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필자 입장에선 이런 연극풍의 소극장 오페라가 전혀 낯설지 않다. 도리어 뮤지컬, 연극 전부 번안해서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 노래를 오페라 감상 인구도 형성되지 않은 마당에 먼저 지어 놓고 머릿수 채우려는 대형극장에서 하는 무리수가 불편했고 개선을 바랬다. 그런데 이번의 소극장 공연의 핵심은 번안을 통한 소통과 공감, 작가와 연출가의 메시지 전달이었다. 예전부터 예술감독 장수동은 이역만리의 문화 산물인 오페라를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탈바꿈하여 언어의 장벽이 없이 무대와 객석이 소통이 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부분의 관객은 음악이야 어차피 모르니 들리는 가사와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장면에 집중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같이 웃고 우는 한국판 마당극이 되게끔 하자는 취지에 작곡과를 졸업하고 지휘자로 활동하는 번안의 양진모가 일등공신이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사성과 현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브레히트와 바일 콤비부터 오페라를 통해 자신만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브레히트의 메시지가 너무나 분명하고 선동적이고 주입식이다. 브레히트 시대의 사회상, 당시 만연하던 무정부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실업, 돈이면 다 되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멸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2년 전 국립오페라단이 쿠르트 바일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을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을 보았을 때와 20세기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 독일에서의 쿠르트 바일은 오늘 같이 거북하진 않았다. 내가 변한건지 아님 사회가 변한건지 본극에서도 브레히트 아님 양진모를 통해 분명히 언급된 작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명백한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독일어를 한국어로 풀다 보니 대사량이 많고 가사템포가 빨라서 성악가들에게 무리가 많이 갔다. 그 가사와 대사에 적합한 멜로디와 호흡이어야 하는데 음악은 독일어에 맞춘 독일음악이다. 언어와 배경이 우리 것으로 전환되었다 하더라도 근본을 이루는 음악 자체가 독일어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마치 우리의 판소리를 영어로 부르는 격이다. 어떻게라도 최대한 한국어에 맞추려는데 그걸 부르고 행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보다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나 넘버를 불렀으면 훨씬 성악적인 기량을 과시했을 정도로 유럽클래식을 전문적으로 학습한 성악가들이다.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테너 조철희는 나중에 [마술피리]를, 테너 김지민은 [라보엠]을 들어봐야 성악가로서 진가를 가름할테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작년 6월 작곡가 이재신의 작곡발표회에서 한국신작가곡과 창작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던 소프라노 이정은이 원래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를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여자 주인공 폴리 역을 부드럽게 풀어갔다. 역시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로도 제격인 소프라노 강수연과 메조소프라노 신민정과 정한나도 약방의 감초 같은 활약을 펼쳤다. 육중한 베이스의 박의현은 쾰른 같은 데서 바그너 [로엔그린]에서의 ‘왕의 전령’이나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가 더 제격일 정도다.
언어가 아닌 음으로만 된 기악 파트, 그 중에서 전체 극을 용의주도하게 끌어간 피아노가 생기발랄하다. 가수 못지않게 소극장, 실내악 편성 악단도 작고 밀접해 있기 때문에 연주하기가 더욱 까다롭고 작은 실수라도 크게 부각되는데 약음기끼고 20세기 카바레 풍의 음악까지 연주한 트럼펫에 포괄적인 박해원의 지휘까지 공연 하나 성사하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각고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자고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즐기지도 않은 외국 걸 가지고 와서 우리끼리 공부만 많이 하고 사서 고생만 하는가...
가사를 다른 나라 언어로 전환하고 외국 오페라의 한국 이식에 따른 걸림돌과 언밸런스는 무대, 연출, 연기를 모두 포함한 음악이 주가 되는 예술에서 필연적인 부딪힘이다. 메시지 전달에 앞선 심금을 울리는 열창과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만드는 음악의 복합체가 오페라 그 자체다. 작곡가가 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운율과 억양, 문법 등을 고려 음과 말을 절묘하게 결합한 결정체를 내용전달을 위해 번역 해버리면 당연히 그 언어에 맞춘 음악이 가장 큰 손해를 보며 뉘앙스와 색채, 묘미를 전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이차원적인 문제다. 일단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재미있어해야 한다. 무대와 객석의 분리와 고립이라는 해묵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듣고 알고 좋아서 이걸 발판으로 진짜를 찾아 들어보고 팬으로 확장해 나가야 하는 발판이 있어야 한다. 커튼콜 후 극장의 불이 꺼지고 관객퇴장을 위해 환한 불이 들어오면서 스피커로 쿠르트 바일의 원곡이 나왔다. 순간 “총 맞은 것처럼” 서서 듣고 조용히 따라 불렀다. “Und der Haifisch, der hat Zaehne...."(상어는 이빨이 있네로 시작하는 메키 매서의 노래 시작가사), 독일에선 일반 대중도 같이 흥얼거리는 민중가요수준이다.
글: 성용원(작곡가)
편집부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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