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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음악감상”
2021-053 / 코지 판 투테 – 유니텔오페라
코지 판 투테(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축약 버전) / 유니텔 오페라
2021년 4월 25일(일) 14:00~16:45
메가박스 성수 더부티크 101호 스위트 E열 3번 / 초대(케빈앤컴퍼니)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대본: 로렌초 다 폰테
지휘: 요아나 말비츠
연출: 크리스토프 로이
출연: 엘사 드레이지(S 피오르딜리지), 안드레 슈엔(Br 굴리엘모), 마리안느 크레바사(Ms 도라벨라), 보그단 볼코브(T 페란도), 레아 데잔드레(S 데스피나), 요하네스 마르틴 크랜츨(Bs 돈 알폰소)
연주: 빈 필하모닉, 빈 국립가극장 합창단
스탭: 요하네스 레이아커(무대디자인), 바바라 드로신(의상디자인), 올라프 빈터(조명디자인)
2020년 8월 잘츠부르크 대축전극장 실황
안방에 블라인드를 단다고 지난 주말에 사 놓고는 계속 공연을 다니느라 설치할 시간이 없어 계속 드레스룸 한쪽에 놓아두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도 낮에 나간다고 하니 아내가 블라인드는 언제 달 거냐며 눈을 흘기는 통에 뒤늦게 블라인드를 설치하다가 나갈 시간이 임박해 겨우 일을 마치고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샤워만 하고 집을 나섰다. 바쁘게 나서기는 했지만 지하철로만 이동하니 가는 길이 순조로워 상영 30분 전에 서울숲역에 도착, 메가박스 성수 방향으로 걷는데 서울숲에 가는 사람들인지, 짧은 거리임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수도권에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쳐버린 것 같다. 빨리 백신 접종률이 높아져 하루빨리 집단면역을 형성해야 할 텐데…….
3층에서 체온 측정과 QR코드 체크를 하고 7층으로 올라가 더부티크 101호로 입장했다. 일전에 이제는 더이상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었으나 코비드로 인해 줄어든 관람객 때문인지 메가박스 성수에서는 계속해서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캔음료를 선택해서 자리로 올라갔다. 이날은 다른 날에 비해 비교적 관객들이 있는 편이어서 대충 나말고도 7~8명이 더 관람한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는 로렌초 다 폰테가 창작한 대본만 놓고 본다면 설득력도 떨어지고 지나치게 여성 비하적인 작품이며,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이야기가 성립될 수가 없어, 요즘 시각에서 본다면 스토리텔링에 실패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가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에서 환영을 받으며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 덕분이다.
[사진=케빈앤컴퍼니 페이스북]
이 오페라를 보기 전, 메가박스 홈페이지에서 출연진을 살펴보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여섯 명의 출연진 가운데 주인공 격인 피오르딜리지 역에 캐스팅된 엘사 드레이지(S)로, 지난 2019년 7월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경기 필하모닉의 연주회 때 내한한 그녀의 연주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엘사 드레이지는 오페렐리아 우승으로 유명해진 신예 소프라노인데, 당시에도 스케줄이 빡빡해서 한국에 오기 어려웠으나 마시모 자네티(Cond)와의 인연으로 마침 스케줄이 비어있던 1주일을 활용해서 처음으로 아시아 무대에 선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네 개의 노래]와 [아폴로 여사제의 노래], 그리고 말러 [교향곡 4번]까지 불러 엘사 드레이지라는 가수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바 있었다. 후기를 작성하면서 당시 기록을 보니 공연 뒤에 그녀의 사인도 받고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사진=케빈앤컴퍼니 홈페이지] 피오르딜리지 역의 엘사 드레이지(S 왼쪽)와 도라벨라 역의 마리안느 크레바사(Ms 오른쪽)
이 공연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100주년이 되던 지난해 8월, 잘츠부르크 대축전극장에서 공연된 실황이다. 지난해 나는 메가박스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으로 중계를 했던 두 오페라 가운데 이 작품을 포기하고 우리나라에서 잘 상연되지 않는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를 관람했는데,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상영해 준 덕분에 두 작품을 모두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단 이 공연의 연출은 좋게 말하면 심플했고 솔직히 말하면 심심했다. 무대 장치라고는 커다란 무대를 가로지르는 흰벽에 양쪽으로 객석을 향해 나 있는 문 두 개가 다였고, 2막에서는 벽이 좌우로 열리면서 그 뒤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배치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또한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여 가수들이 현대의 일상복을 입고 나오면서 더욱 볼거리가 없어졌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스토리가 황당해서 현대적으로 해석할 경우, 연출가가 결말을 원작과는 다르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아 이 작품도 원작과는 다르게 설정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결말은 원작과 동일하게 피오르딜리지와 굴리엘모, 그리고 도나벨라와 페란도가 엮어지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 무대에서 볼 것이 없어지면서 결국 관객들의 눈을 끌 수 있는 요소는 가수들의 연기 밖에는 없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 공연에 캐스트된 가수들의 연기는 매우 좋았다. 특히 피오르딜리지 역의 엘사 드레이지(S)는 새로 자신 앞에 나타난 알바니아 청년과 약혼자 굴리엘모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라든지, 새로운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굴리엘모에 대한 미련을 떨친 모습이라든지, 마지막에 굴리엘모가 나타나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세심한 표정이 요구되는 연기들을 마치 연기자인 것처럼 소화해냈으며, 도라벨라 역의 마리안느 크레바사(Ms)도 드레이지에 버금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두 남자 가수인 굴리엘모 역의 안드레 슈엔(Br)과 페란도 역의 보그단 볼코프(T)는 노래는 좋았으나 연기는 두 여가수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특히 돈 알폰소 역의 요하네스 마르틴 크랜츨(Bs)의 경우에는 표정이 진행되는 상황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 좀 혼란스웠다.
[사진=케빈앤컴퍼니 페이스북] 엘사 드레이지의 연기가 참 좋았다.
이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역시 음악이었다. 엘사 드레이지는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도 정말 빼어났다. 특히 1막에서 자신의 절개를 노래하는 아리아 '바위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은 절창이었다. 마리안느 크레바사의 목소리도 개성적이었다. 도라벨라가 피오르딜리지와 함께 부르는 첫 아리아 '이렇게 아름다운 입술이 있을까'를 듣는 순간 크레바사의 목소리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저음이지만 소프라노 못지 않게 싱싱하고 윤기 있는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남자 가수 중에는 굴리엘모 역의 안드레 슈엔(Br)의 소리가 개인적으로는 좋았고, 페란도 역의 보그단 볼코프도 1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사랑의 산들바람은'을 멋지게 불러주었다. 데스피나 역의 레아 데잔드레(S)도 좋은 소리를 가진 것 같았으나 곡 중 인상적인 아리아가 없어 확실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고, 돈 알폰소 역을 맡은 요하네스 마르틴 크랜츨(Br)은 연기와는 달리 노래는 안정된 발성으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고 생각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페이스북] 왼쪽부터 마리안느 크레바사(Ms), 레아 데잔드레(S), 요하네스 마르틴 크랜츨(Bs), 안드레 슈엔(Br), 보그단 볼코프(T), 엘사 드레이지(S)
이 오페라의 특징은 독창보다는 중창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혼자서 부르는 아리아는 몇 개 되지 않지만 두 명이나 세 명, 네 명, 그리고 여섯 명이 같이 부르는 중창이 훨씬 더 많다. 그만큼 가수들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에 캐스팅된 가수들은 서로 간의 호흡이 잘 맞아 좋은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누가 누구와 잘 맞는다고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가수들이 다른 모든 가수들과의 호흡이 정말 좋았다. 특이한 점은 공연 내내 합창단이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았고 공연 뒤 커튼콜에서만 무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합창단은 아마 무대 뒤에서 스크린 속에 나타난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불렀을 것 같다.
[사진=케빈앤컴퍼니 홈페이지] 2막에서 도라벨라를 유혹하는 굴리엘모
또하나의 숨은 주역은 멋진 연주를 들려준 빈 필하모닉과 세 시간 가까이 열정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지휘를 해 준 요아나 말비츠 지휘자였다. 요아나 말비츠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년 역사상 대타로 나선 사례를 제외하고 첫 정식 지휘를 맡은 여성 지휘자라고 하는데, 1986년 독일 태생으로 하노버음악원의 영재 과정에서 이고르 레빗(Pf)과 동문수학했다고 한다. 당시 하노버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이던 시몬 영을 모델로 삼아 공부를 계속했는데 현재는 뉘른베르크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요아나 말비츠는 빈 필하모닉이라는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잘 만들어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필하모닉의 연주야 말해 무엇할까.
[사진=케빈앤컴퍼니 홈페이지] 알바니아에서 온 이방인들과 결혼 서약을 한 뒤 약혼자들이 온다는 소식에 면사포를 쓴 채 이방인을 숨기는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
아마 잘츠부르크 쪽에서도 비록 단출한 연출이었지만 음악적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연이라고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음악으로 승부하기 위해 연출을 심플하게 가져간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음악적으로 빼어난 공연이라 휴일 한나절을 희생할 만큼 충분히 가치있고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글 봄뫼
편집부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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