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나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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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뫼]의 나도 평론가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나부코(전 4막) / 국립오페라단
2021년 8월 15일(일) 15:00~18:10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층 B구역 4열 22번 / C석 24,000원(문화릴레이 20%)

작곡: 주세페 베르디
대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
지휘: 홍석원
연출: 스테파노 포다
​출연: 고성현(Br 나부코), 박현주(S 아비가일레), 최승현(Ms 페네나), 박성규(T 이즈마엘레), 최웅조(Bs 자카리아), 임은송(S 안나), 김지민(T 압달로), 박경태(Bs 바알의 대제사장), 국립합창단, 더 굿, 아트컴퍼니 하늘
​연주: 경기 필하모닉

​스탭: 스테파노 포다(무대&의상&조명디자인, 안무), 파올로 지아니 체이(드라마투르그&협력연출), 윤의중(합창지휘), 구유진(분장)


[사진=봄뫼] 포토월

올해 국립오페라단의 레퍼토리 가운데에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다. [나부코]는 베르디의 출세작이고 소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가거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라는 합창곡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 무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고, 이 공연도 16년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16년 전이면 내가 공연장에 거의 발길을 끊었던 시기였으니 이 작품은 나도 이날이 처음이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국립극장 근처 자유총연맹 건물 안에 있는 광릉불고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광릉불고기는 원래 광릉내에 있는 유명한 식당으로 오래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음식점인데 프랜차이즈화한 것인지, 아니면 분점인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9월에 오픈했다고 하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반찬도 정갈하니 괜찮았다. 무엇보다 국립극장 근처 식당은 대부분 주차가 쉽지 않은데 이곳은 주차장 너~~무 넓직해서 좋았다.
식사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바로 해오름극장으로 갔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찾는데 국립극장 창구로 갔더니 국립극장에서 예매한 게 아니라 인터파크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오픈 시간에 바로 예매를 하지 못해 국립극장에는 자리가 거의 남아 있는 게 없어서 인터파크로 넘어갔던 기억이 났다. 티켓을 찾고 프로그램북을 한 권 산 뒤, 그래도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아 부리나케 오후카페로 가서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극장 로비층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데 1층에서 김철호 국립극장장을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TV에서만 보던 노란 점퍼를 입은 분이 나를 보고 공연 보러 오셨냐고 묻길래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혹시 장관님이시냐고 했더니 옆에 있던 다른 분이 황희 문체부장관이라고 대신 대답해 주었다. 뭐 그 분들은 한 층만 올라가니 더 이야기 나눌 것도 없이 서로 재밌게 보시라고 인사하고는 그 분들은 2층에서 내리고 나는 3층에서 내렸다. 객석에 들어가니 맨뒤에서 두 번째 줄이었는데도 무대와의 거리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층보다 더 가까웠다. 내 자리는 B블럭에서 C블럭에 가까운 계단 바로 옆 자리로 무대에 사각도 없이 관람하기에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A블럭이나 C블럭의 경우에는 사각이 존재할 것 같았는데, 그것은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을 하며 거의 슈박스 형태로 극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프로시니엄의 폭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이드 좌석에서의 사각이 생긴 건 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사진=봄뫼]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본 무대

예술의전당은 공연 전, 막 위에 작품의 제목을 투사하는 게 보통인데 국립극장은 아무 것도 없으니 좀 밋밋한 느낌이 들었는데, 무대 공연의 경우에는 그런 시도도 좋을 것 같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는 2017년 국립오페라단의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의 연출을 맡아 상징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무대를 만들어내 깊은 인상을 주었던 연출가인데, 이날의 공연 역시 [보리스 고두노프]에 못지 않은 상징적이고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비롯한 유럽 무대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 않는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날 포다 연출의 압권은 역시 3막 '가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불릴 때 나왔다. 이 합창이 불리며 무대 천장에서는 서서히 또하나의 무대가 내려왔는데, 그 무대에는 의자가 줄을 지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의자 하나하나에는 사람의 형상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로 저걸 만들어 놓고 바닥까지 내렸을까 의아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창문 밖에 내걸었던 태극기를 거둬들이며 언뜻 떠오른 것이 소녀상이었다. 공연 전 보았던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를 잘 알고 있다며 이 작품에 한을 담아내겠다고 했었는데, 아마 나라를 잃고 외지에서 떠도는 히브리인들의 마음과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타지를 떠돌며 인권을 유린당한 위안부 소녀들의 마음엔 모두 비슷한 한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녀상과는 형태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실 서 있는 것이 더 절절함을 나타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저작권과 관련되는 문제 때문에 다른 형태로 구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소녀상이 있는 무대를 바닥까지 내리며 어린 배우들이 그 위에 올라가 돌아보게 한 것은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잊지 않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아닐까 싶다.(이 글을 쓰는 도중에 언론에 올라온 기사를 봤는데 거기에도 이 추가 무대가 소녀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사진=봄뫼] 소녀상이 의자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구현된 2층 무대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무대는 우선 포다의 연출과 무대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이야기한 소녀상이 있는 새로운 무대 이외에도 각 막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무대디자인을 선보였는데, 2막에서 흰색 망사로 둘러쌓인 원통형의 장치도 매우 신선했다. 이 장치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히브리인들을 포위하고 가두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나부코의 명령에 의해 신전이 불길에 휩싸인 장면을 연출할 때에도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1막에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기구나 2막 이후에 역시 천장으로부터 드리운 지구본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원작에서 바빌론의 신전이 파괴되는 4막의 장면에서 지구본이 파괴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 보건대 지구본은 바빌로니아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회전무대인 턴테이블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이번 무대에는 다행히 턴테이블이 설치되어 효과적으로 운용되었다. 당시 국립극장 측에서는 이전처럼 턴테이블이 있는 웨건을 만들어 고정적으로 설치하지는 않겠지만 턴테이블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여 따로 조립식 턴테이블을 독일인가에 주문해서 준비해 놓고 있다가 필요할 경우에만 사용하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 공연에 사용한 턴테이블이 바로 그렇게 해서 사용된 것 같다.

​이날은 오페라글라스를 가져가지 않는 바람에 자세히 관찰하지는 못했으나 의상의 경우에는 흰색과 빨간색을 대비시킨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은 흰색의 의상을 입었고, 침략과 파괴를 알삼은 바빌로니아인들은 빨간색의 의상을 입게 했다. 나부코의 친딸이면서 바빌로니아에 인질로 잡혀 있는 페네나는 1막에서는 빨간색 의상을 입고 나오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이후에는 흰색 의상으로 갈아입음으로써 관객들이 명시적으로 이야기의 판세가 어떻게 전개되고 변화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이날 캐스트에는 변화가 좀 있었는데, 원래 타이틀롤인 나부코 역에는 정승기(Br)가 출연할 예정이었다. [나부코]가 공연되는 기간 중에는 이날 밖에 시간을 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날로 예매를 하긴 했으나 이날도 최승현(Ms)이나 박성규(T)등 기대되는 가수들이 있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A팀에는 고성현(Br)을 비롯해 양송미(Ms), 박준혁(Bs) 같은 좋은 가수들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프로필만으로도 기대되는 문수진(S) 둥이 출연하기 때문에 출연진이 더 좋다고는 생각되지만 역시 가장 아쉬운 건 고성현(Br)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연 직전에 갑자기 자막으로 정승기가 건강상의 이유로 출연하지 못하고 고성현으로 대체되었다는 안내가 나왔다. 공연이 진행되는 걸 보면 코로나와 관련된 것은 아닌 것 같고 다른 문제로 해서 컨디션 저하가 온 것 같았다.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던 고성현을 보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역시 고성현은 압도적이었다. 어느 위치에서나 어느 자세에서나 극장을 꽉 채운, 묵직하면서도 탄탄한 소리가 일품이었고 연기 또한 훌륭했다. 국내에서 고성현보다 나부코를 더 잘 부를 가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비가일레 역의 박현주(S)는 몇 해 전 에술의전당 가곡의 밤 무대에서 잠깐 본 것이 전부인데, 당시 딕션이 매우 정확한 가수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박현주는 드라마티코 소프라노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역을 소화하기에는 버거울 법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곡에 따라 편차가 좀 있었던 것은 아쉬웠다. 최승현(Ms)은 여러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가수인데 아무래도 작품의 중심이 나부코와 아비가일레 쪽에 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크지 않았고, 이 작품의 유일한 멜로 라인인 이즈마일레와의 이야기도 그리 핵심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몇 곡 안 되는 아리아에서 굳은 신념을 지닌 인물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었다. 박성규(T)는 리리코 테너로 알고 있는데, 평소 특유의 깨끗한 소리로 극장을 압도하는 모습이 이날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작품 속의 두 베이스 최웅조과 박경태는 오페라 무대에서 처음 보는 가수들인데, 두 사람 모두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소리를 유감 없이 객석에 들려주었다. 김지민(T)은 작은 역할이지만 최근 오페라 무대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수인데, 이날 공연은 내가 보았던 그 동안의 김지민의 모습 중 최고였다.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안나 역의 임은송(S)도 처음 보는 가수이고 극 중 솔로 부분이 아주 적었지만 무척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 다른 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봄뫼] 왼쪽부터 김지민(T 압달로), 임은송(S 안나), 최웅조(Bs 자카리아), 고성현(Br 나부코), 박현주(S 아비가일레), 박성규(T 이즈마엘레), 최승현(Ms 페네나), 박경태(Bs 바알의 대제사장)


이날 연주는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도맡다시피 하는 코리안 심포니가 아니라 오랜만에 경기 필하모닉이 참여했다. 리모델링된 해오름극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무대 위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피트에서의 연주라 그런지 처음엔 소리가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풍부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오케스트라 피트의 음향 문제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1막보다는 뒤로 갈수록 소리가 나아진 것은 악단이 환경에 적응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소리에 익숙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날이 나흘째 공연이었으니 오케스트라가 해오름극장의 음향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을 텐데 여하간 이날의 경기 필하모닉의 연주는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올초 광주시향의 예술감독에 취임한 홍석원 지휘자는 요즘 전방위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데, 이날도 익숙하지 않은 오케스트라를 잘 이끌고 열정적인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봄뫼] 홍석원 지휘자와 경기 필하모닉


이날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립합창단의 열연과 열창. 무대가 소리를 모아주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날 국립합창단의 합창은 힘차며 윤기 있는 소리로 가득해 작품의 수준을 한층 높여주는 데 기여했다.

그에 비해 하우스의 운영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3층 출입구 바로 옆이었는데, 1부가 시작되고 두 번이나 공연 중에 중간입장이 행해졌으며, 이후 두 번의 인터미션이 끝나고 공연이 속개되었을 때에도 어김없이 중간입장이 있었다. 1막이 끝나고 화가 나서 어셔에게 국립극장은 아무 때나 중간입장을 허용하냐니까 공연 시작 후 8분과 16분이 지났을 때 허용해 주는 걸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난 처음엔 그게 한 장면이 끝나고 잠시 쉬어가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리아가 불려지고 있건 말건 무조건 그 시간에 중간입장을 허용한다는 황당한 발상이었다. 하우스매니저를 찾아가 항의하려고도 했으나 장관이 방문한 날이라 인터미션에 매니저를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있었지만 극장은 잘 만들어놓고 이런 수준으로 하우스를 운영한다면 관객들의 비판을 면치 못할 것 같다. 하우스는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대하는, 말하자면 극장의 얼굴인 셈인데 이들의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시 매뉴얼을 점검하고 운영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소수의 관객들 때문에 시간을 지켜 공연장에 온 다수의 관객이 피해를 보게 하는 식의 하우스 운영은 반드시 지양해야 하리라고 본다.

[사진=봄뫼] 전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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