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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호동 / 국립오페라단
2022년 3월 11일(금) 19:30~21:25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층 C구역 4열 2번 / A석 초대(문화와예술)
원작: 유치진 [자명고]
작곡: 장일남
대본: 고봉인
지휘: 여자경
연출: 한승원
음악 자문·편곡: 전예은
출연: 이승묵(T 호동), 박현주(S 낙랑공주), 김남두(T 최리왕), 박정민(Br 장초 장군), 이준석(Bs 무고수), 양송미(Ms 샛별), 남수지(Ms 반달), 이요섭(T 예관A), 박지민(Br 예관B), 윤병삼(Br 예관C), 김우중(T 장수), 김미진 서의철(이야기꾼), 박도현 박원빈 백재우 이현진 장재동 조남규(액션 배우), 위너오페라합창단
연주: 클림오케스트라, 정겨레(고수), 고수영(해금)
스탭: 코너 머피(무대&의상), 이주원(조명), 박영화(분장), 김은정(무술감독), 박순석(합창지휘), 이탐구(부지휘), 김소강(음악코치)
[사진=봄뫼] 포토월
이번 주에는 원래 네 번의 공연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뜻밖에 세 번의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실제 관람하는 공연은 이 공연이 유일하게 됐다. 수요일에 보기로 했던 서울예술단의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관람을 위해 예술의전당에까지 갔으나 급작스럽게 낮 공연 이후 휘 역의 윤태호가 몸에 이상을 느껴 실시한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PCR 검사를 하게 되어 그로 인해 내가 보기로 한 저녁 회차 공연이 취소되었고(이후 PCR 검사에서 최종 양성 판정이 나와 15일까지의 모든 회차가 취소되었다.), 목요일에 예매를 했던 앙상블 오푸스의 공연은 뒤늦은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으며, 토요일 극단 측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관람하려던 [갈매기]도 출연 배우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공연 일이 뒤로 미뤄지면서 공연 일정이 대폭 축소되었고 새로 잡힌 공연일에는 다른 일정으로 인해 갈 수 없게 되어 이 역시 취소가 되었다. [왕자 호동]은 티켓 오픈했을 때 예매를 했던 공연이었는데 공연에 임박해서 문화와예술에서 초대권을 준다길래 신청을 하고 그 티켓으로 가게 되었다.
[왕자 호동]은 1962년 국립오페라단의 창단기념공연으로 초연되었다고 하는데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아 그 기념으로 재연을 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립오페라단 공연이 그렇듯이 이 공연도 더블 캐스트로 진행되는데, 보고 싶은 가수들이 두 캐스트에 고르게 나누어져 있어 날짜를 선택하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이날 캐스트로 결정을 했다. 국립극장에 도착해서 티켓을 받으니 3층 C구역의 4열로 내가 원래 예매한 자리보다는 좋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볼 만은 했다. 이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국립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다른 극장들의 피트와는 달리 무대 아래쪽까지 확장되어 있어서 상당히 공간이 넓은 장점은 있었으나 대신 음향 면에서는 소리가 천장에 부딪쳐 굴절되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다.
[사진=봄뫼]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본 무대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오페라보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60년 전, 초연했을 때의 녹음이나 영상 등의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당시의 무대 구성이라든지 연출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초연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당히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1막과 3막 초반부에 해설을 넣은 부분이었는데 이것은 원작인 유치진의 5막 희곡을 대본가인 고봉인이 3막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해진 서사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넣은 것이라고 한다. 막이 오르기 전, 이번에 전예은 작곡가가 새롭게 작곡해서 넣은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1층 테라스 양쪽에 소리꾼 김미진과 서의철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작품의 배경을 낭독 형태로 구연했고 이때 무대에는 호동과 공주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과 호동이 장초에게 패배해 포로로 잡히는 모습이 연출되었으며 고구려의 군사들과 낙랑의 군사들이 대결하는 액션신에서는 뮤지컬적인 요소도 들어갔는데, 이는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승원 연출가의 특징이 드러난 장면이라고 보였다. 또한 3막이 시작되기 전에는 두 소리꾼이 정겨례 고수와 함께 무대로 올라와 판소리 형식으로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생각이나 사건의 전개 같은 부분을 전지적 서술자의 입장에서 구연해 주었다. 이 3막 전의 판소리 형식의 해설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니오는 해금 소리가 유독 청아하게 들렸다. 원작의 공연 시간이 짧다 보니 이런 구성을 통해 러닝타임을 어느 정도 늘릴 수도 있었을 뿐 아니라 한국적인 소재의 오페라에 한국적인 요소인 판소리를 넣은 것은 다양한 장르가 섞이고 있는 현대 오페라의 추세로 보면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되었다.
[사진=봄뫼] 코너 머피(무대&의상)와 한승원(연출), 오른쪽 위는 여자경(Cond)
무대와 의상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는 별다른 장치 없이 전체를 황금빛 계단으로 가득 채우고 장면에 따라 계단의 일부를 스테이지 리프트를 이용하여 올리고 내리며 변화를 주었으며, 3막에서는 계단의 일부에 무대 상수에서 하수 방향으로 대각선 모양으로 길게 뻗은 붉은 길을 낸 것이 전부였다. 무대가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이것도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현대 오페라의 추세를 따라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도 독특했다. 한사군이 있었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임에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영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코너 머피에게 의상을 맡긴 건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형태의 의상을 기대했기 때문일 텐데, 머피는 그러한 국립오페라단의 기대에 걸맞은 의상을 만들어냈다. 즉, 겉옷은 두루마기 비슷하게 우리의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의상을 만들었다면 그 속에 입은 옷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낙랑공주의 경우, 1막에서는 겉에 붉은색의 두루마기 같은 의상을 입은 데 반해 그 안에는 검은 가죽 바지에 검은색 부츠를 신어 얼핏 전통적인 듯하면서도 현대적인 의상을 만들어 냈다.
[사진=봄뫼] 전 출연진
장일남의 음악은 전예은의 손을 거쳐 수정이 됐다 해도 60년 전의 음악이라는 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비목]이라든지, [기다리는 마음] 같은 불멸의 한국 가곡을 작곡한 분이었으나 아직은 젊은 나이에 쓴 곡이라 그런지 이 오페라에서는 그의 가곡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정서가 살아 있는 아리아가 없었으며 오케스트레이션에서도 참신한 느낌을 주는 표현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마냥 낡은 것만은 아니어서 전체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현대의 오페라에 비해서 그런 단점들이 보였다는 점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대부분이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된 작품들임에도 오늘날 전 세계의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만큼 음악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일 텐데, 그렇게 본다면 60년 밖에 안 된 우리 작품이 초연 이후 그동안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물론 이탈리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오늘날 음악을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왕자, 호동]보다는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베르디의 [리골레토]나 [나부코]를 선택할 것이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캐스트는 이승묵(T 호동)과 박현주(S 낙랑공주), 김남두(T 최리왕)와 박정민(Br 장초장군)이 출연하는 A팀이었는데, 이승묵은 그동안 두어 번의 무대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으나 전막 오페라에서는 처음이었는데, 기대만큼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성량도 충분했고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고음도 좋았다. 박현주(S)는 지난해 국립극장 재개관 기념으로 공연된 [나부코]에서 아비가일레 역을 맡아 비교적 괜찮은 노래를 들려주었고 2018년 예술의전당 가곡의 밤 무대에서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정확한 딕션을 들려주어서 인상에 남는 가수였는데, 이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노래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고 딕션도 정확하지 않았다.
[사진=봄뫼] 낙랑공주 역의 박현주(S)와 호동 역의 이승묵(T)
최리왕 역의 김남두(T)는 스핀토 리리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전처럼 찌르는 듯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장초 장군 역을 맡은 박정민(Br)은 워낙 많은 무대에서 본 가수로 표현력도 좋고 성량도 풍부하지만 늘 딕션이 아쉬웠는데, 다른 날에 비해서는 좋았으나 이날도 역시 딕션의 정확도는 함께 출연한 이승묵이나 김남두에 비해 좀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무대 양쪽 사이드에 설치된 모니터에 자막을 제공해 준 덕에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무고수 역의 이준석(Bs)은 묵직한 음성에 안정감 있는 연기가 좋았다. 그밖에 3막에서만 등장한 샛별 역의 양송미(Ms)와 반달 역의 남수지(Ms)도 짧은 등장 시간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은 2중창을 불러주었다.
[사진=봄뫼] 왼쪽부터 여자경(Cond), 이승묵(T 호동), 박정민(Br 장초장군), 남수지(Ms 반달), 이준석(Bs 무고수), 이요섭(T 예관A), 김우중(T 장수)
[사진=봄뫼] 왼쪽부터 김우중(T 장수), 박지민(Br 예관B), 윤병삼(Br 예관C), 양송미(Ms 샛별), 김남두(T 최리왕), 박현주(S 낙랑공주), 코너 머피(무대&의상)와 한승원(연출)
여자경(Cond)은 대학 시절 은사였던 장일남의 곡을 연주한다는데 각별한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크게 흠잡을 데 없이 비교적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요즘 국립 단체들과 자주 연주를 하고 있는 클림 오케스트라는 기대보다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공연 전에 가졌던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피트의 구조로 인해 소리가 왜곡되지 않을까 싶었던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이날 들었던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온전히 자연음이었는지, 아니면 일부 마이크를 사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연음이었다면 생각보다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피트의 구조가 음향이 잘 퍼지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 마이크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음향이라면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며칠 뒤 국립극장을 간 김에 하우스 매니저께 문의했더니 음향감독님께서 작성하신 장문의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저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내용이라 음향감독님의 허락을 얻어 아래에 전문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국립극장 책임음향감독 지영입니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햇수로 약 4~5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국고로 나라 극장을 다시 짓는 일이니 만큼 음향감독으로서 음향공사 부분은 진심과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기존의 해오름극장은 1,563석으로 건축음향적으로 좋지 않은 부채꼴 형태 구조와 측벽 마감과 바닥 마감이 모두 카페트로 되어 있어 전기음향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 원음 공연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개선된 해오름극장은 장방형 말발굽 오페라 극장 형태로 객석 최말단부터 무대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음의 손실이 적습니다. 건축음향학적으로는 피트 상단 위에 있는 어커스틱 캐노피와 객석 측벽에 세로로 길게 이어진 단풍 마감의 루버 마감은 초기반사음부터 음이 사라지기까지 자연스러운 전달을 돕습니다. 초기 반사음은 직접음을 도와 소리가 더 잘 전달 되도록 돕는 동시에 음장감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 피트 역시 내부 피트 안에도 세로로 단풍마감 루버 형태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면 오케스트라 피트 상단 위의 어커스틱 캐노피가 반사음을 만들어 주고 객석 측벽 세로 루버 마감 역시 반사음을 생성해주고 불필요한 울림을 만들지 않도록 음을 산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리가 두 번 울리는 에코 현상이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객석의 거리에 따른 음의 손실 최소화와 건축 음향에 도움이 되는 시설들을 통해 음의 명료도 또한 높이는 결과를 갖게 되었습니다. 잔향 시간은 객석의 공석 시 음향 반사판을 사용 시 약1.65초이며 없을 경우에는 1.55 정도 측정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전용 홀은 2초가 넘어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공연은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국립극장은 전기음향을 사용하는 공연도 함께 병행 해야 하기 때문에 긴 잔향 시간을 갖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극의 공연 경우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동시에 무대에 나와 연기를 하는데 죽은 사람을 표현하고자 전기음향장치(Reverb)로 공간감을 만들어내어 구현을 합니다. 잔향시간이 1.8초 이상이 되는 공연장에서 재 공연을 할 경우 공연장에서는 산 사람도 죽은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잔향 시간이 긴 공간은 극(drama)공연은 불가해집니다. 국립극장은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처럼 전기음향을 쓰는 공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적합한 잔향 시간을 찾아 설계하고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전기음향은 한국 최초로 몰입형 입체음향 시스템을 도입하여 130대 이상의 스피커가 어느 좌석에서도 이질감 없이 공연을 감상하도록 시공이 되었습니다. 공연장을 이용하시는 관객이나 공연을 만드는 음향감독들이 편하게 즐겁게 공연을 만들고 감상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음향시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 봄뫼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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