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라 보엠


go Magazine Menugo Stage Vol.21






박경준의 오페라 산책

푸치니의 [라 보엠]


작곡의 경과 전작 [마농 레스코]를 완성한 후, 푸치니는 베르가의 작품 등에 마음이 끌렸으나 결국 [라보엠]으로 결정하고 일리카와 지아코자에게 대본의 집필을 부탁, 일리카가 이에 착수한 것이 1893년 2월의 [마농 레스코] 초연 얼마 전이었다고 한다. 특별한 줄거리도 없는 23장의 단편을 엮은 것에 불과한 원작을 각색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대본의 좋고 나쁨이 오페라의 생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한 푸치니는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차례의 수정을 요구했다. 푸치니는 대본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조금씩 작곡을 시작하여 1894년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태반을 작곡, 12월 10일에 완성하였다.


“젊음, 희망, 열정, 그리고 뒤이어 미소와 눈물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뮈르제의 방식이다.”(보들레르) 앙리 뮈르제는 플로베르와 동시대 작가로 1822년 파리에서 태어나 39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뮈르제는 가난 속에서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다.

별 볼일 없었던 뮈르제는 1845~1849년 사이 파리의 일간신문 〈르 코르세르 사탕Le Corsair Satan〉에 보헤미안인 자신의 삶을 배경으로 소설을 연재했다. 덕분에 뮈르제 자신의 감독하에 극작가 테오도르 바리에르Théodore Barrière가 각색한 연극 〈보헤미안 보헤미안은 원래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거주하던 집시들을 의미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처럼 떠돌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단어로 변했다.
의 인생La Vie de Bohème〉으로 1849년 극찬을 받았다. 성공을 계기로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 2년 뒤 1851년에는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두 작품은 보헤미안 삶의 모델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었다. 앙리 뮈르제의 소설을 바탕으로 〈라보엠〉이 창작되었다.


등장인물 로돌포[시인](T), 마르첼로[화가](Br), 꼴리네[철학자](B), 쇼나르[음악가](Br), 미미[로돌포의 애인](S), 무제타[마르첼로의 애인](S), 베누아[집주인](B), 알친도르[패트런의 신분을 가진 부유한 노신사](B), 파르피뇨르[장난감상인](T), 군중, 아이들, 고적대와 순찰병들, 급사들, 세관의 관리들.
때와 곳 1830년경. 파리.

〈라보엠〉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앙리 뮈르세와 친구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로돌포는 뮈르제 자신이고, 미미는 뮈르제의 여자 친구 뤼실이며, 마르셀로는 뮈르제와 같은 집에 살았던 작가와 화가를 본 뜬 인물이다. 무제타 역시 마리에트라는 실존 인물이다. 쇼나르는 예술에 취미가 있었으나 나중에 장남감 제조업자가 된 알렉산더 숀네였다.
〈라보엠〉 대본가 일리카는 바리에르의 희곡에 자신의 감성을 불어넣으면서 원작에서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분절分節적인 형태와 다소 산만한 극적 구조를 단순하게 정리했다. 일리카는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에 나타나 있는 여러 상황들과 에피소드들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마르첼로와 무제타가 다투고 헤어지는 장면까지는 연극의 초안과 유사하게 전개된다. 제3막은 부유한 가정의 마당에서 시작된다. 무제타는 부유한 후원자가 있었지만 무제타의 씀씀이에 질려서 돈을 주지 않는다. 무제타는 쫓겨나게 되었다. 무제타는 경매 딱지가 붙은 가구를 자기 마음대로 팔아치우고 파티를 연다. 무제타는 국가 평의원인 새 애인에게 마음이 기울어 파티에서 자기의 오랜 애인인 양 소개한다. 무제타가 초대한 파티에 보헤미안들이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준비된 파티에 많은 거주자들을 초대된다. 이윽고 미미가 도착하는데, 그녀의 옷이 초라해보여 무제타가 자기 옷 중 하나를 골라 미미에게 선물하고, 부자인 비스콘티노 파올로에게 미미를 소개시켜 준다. 이들은 매우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을 갖는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기는 하나 약간 을씨년스러운 마당에서 파티는 흥겹게 진행된다.

미미는 새 애인과 크게 다툰 뒤 음독자살을 시도하고, 로돌포의 품 안에서 죽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며 로돌포를 찾아간다. 친구들은 미미를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미미는 병원의 착오 때문에 로돌포도, 보헤미안 친구들도 모르는 사이 쓸쓸하게 숨을 거둔다.”

이것은 연극 〈보헤미안의 인생〉을 대본 작가 일리카가 고친 것이다. 또 다른 대본 작가인 자코자는 이같이 산만한 초고를 우수한 시구로 극의 형태를 만들어 갔다. 그러나 푸치니는 여러 곳 수정을 요구했고, 이후 일부를 생략하면서 전체적으로 개작했다. 푸치니와 대본 작가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다. 일리카는 분노했고, 자코자는 낙담해서 〈라보엠〉을 포기하려 했다. 그럼에도 푸치니는 모든 변화와 수용을 거부하고 침묵 속에 들어갔다.
일리카는 “푸치니는 벌써 〈라보엠〉에 지쳤나봐? 어느 날 아침 우리 집에서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와 식사를 하였는데, 푸치니는 정말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일리카의 〈라보엠〉에 대한 걱정은 무시한 채 푸치니는 작업은 하지 않고 호수로 사냥을 다녔다. 푸치니는 어느 화창한 날, 근처에 있는 지노리 후작의 소유지에 불법 침입하여 체포되는 망신까지 당했다.


자코모 푸치니, 주제페 자코자, 루이지 일리카

베르디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국민 영웅 대접을 받는 것에 반해, 푸치니는 이탈리아 전통 음악을 저버리고 신파극만 만든다고 비난 받았다. ‘푸치니 증오 클럽’까지 생겼다. 푸치니는 ‘자신만의 극을 상기할 수 있는 말, 자신을 위해서만 가치가 있는 말’만 강조했다.
베르디는 대본작가 피아베Piave에게
“연극적인 말을, 그 상황을 명백하게 말해주는 말을 강요하였다.” 베르디는 모든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극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 푸치니는 자신만의 음악에 적합한 대본만을 원했다. 훗날 일리카는 푸치니에게 쓴 편지에 대본 작가로서 가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 “가사의 형식은 음악을, 단지 음악을, 음악 이외의 것이 아닌 음악을 만든다! 음악만이 형식이다! 가사는 단지 초안일 뿐이다.”

원작은 매춘부, 떠돌이 화가들, 무일푼 예술가들이 카페 모뮈에서 술을 위안 삼아 살아가는 시대의 일상 풍경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음악가 쇼나르,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셀(마르첼로), 철학자인 콜린(콜리네), 변덕쟁이 뮈제트(무제타), 미미가 등장한다. 연극으로 이미 검증을 받은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자코자의 글(말)과 일리카의 연극 장치(내용)와 만나 대본이 완성되고, 푸치니가 오페라 〈라보엠〉을 창작하게 되었다.
자코자는 피에몬테 출신의 문학 교수며 롬바르디아의 중상류층 부르주아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졌던 정기간행물 《문학Lettura》의 사장이었다. 그는 〈라보엠〉 작업을 시작하기 6년 전에 무대에 올린 연극 〈슬픈 사랑Tristi amori〉 이탈리아 연극 평론가인 실비오 다미코Silvio D’Amico는 “무미건조한 시골 생활을 배경으로 소소한 가정사에 익숙한 평범한 부르주아 계층의 부정한 행위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자코사의 글은 명확하지 않고 어두운 톤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어두움 속에 순수의 불빛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자양분을 끌어내었다”고 평한다.
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자코자는 항상 여성 인물상에서 극의 중심을 찾았고 동시대 부르주아 계층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일리카는 극작가, 작사가, 기자였다. 푸치니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카탈라니Catalani를 위한 〈발리Wally〉와 프란케티Franchetti를 위한 〈독일Germania〉이라는 우수한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총 80곡에 달하는 오페라 대본을 집필하였다. 탁월한 극적 구성 능력과 아름다운 문체로 1800년대 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본 작가였다.
과연 푸치니의 세계적인 명성은 그만의 감성만으로 가능했을까? 어쩌면 대본 작가인 일리카와 자코사의 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들은 환상적인 조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라보엠〉이라는 걸작을 낳았다. 악보 출판업자인 줄리오 리코르디 줄리오 리코르디Giulio Ricordi: 이탈리아 음악 출판업자로 전세계에 유명한 인물로, 오페라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다.
는 이들의 결합을 ‘매우 성스러운 삼위일체’라 정의하였으며, 푸치니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있게 해 준 3편의 명작 오페라 〈토스카〉, 〈나비부인〉, 〈라보엠〉을 출판하므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라보엠〉은 1830년경 프랑스 파리 라틴 지구를 배경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되는 슬픈 사랑을 그린 오페라며,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젊은 예술가들과 그 시대 유행한 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여주인공 미미의 이야기다. 〈라보엠〉은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단골로 공연되는 금세기 최고의 오페라 중 하나다.
파리 5구의 라틴 지역은 13세기 이래 대학교들이 라틴어로 수업을 했다는 유래로 지금까지 라틴 지구로 분류된다. 라틴 지역은 헤밍웨이와 사르트르의 집필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누워 있는 거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지성인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라보엠〉의 배경이 라틴 지역 다락방인 것을 보면,
당시 젊은 지성들이 속된 말로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외침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오페라들은 인생의 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라보엠〉 제1막은 12월 24일 저녁, 제3막은 그 다음 해 2월 새벽, 제4막은 5월의 낮으로 이어져 대략 6개월의 시간을 통해 극이 마무리된다.

글 발행인 박경준
사진 강희갑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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