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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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허왕후


허왕후(전 4막) / 김해문화재단

2022년 5월 14일(토) 19:30~22:05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층 A블럭 7열 14번 / A석 초대(문화와예술)

작곡: 김주원

대본·연출: 김숙영

지휘: 이효상

출연: 김신혜(S 허황옥), 정의근(T 김수로), 서필(T 석탈해), 박정민(Br 이진아시), 손가슬(S 디얀시), 이대범(Bs 신귀간), 김성진(T 유천간), 최은석(Br 국신사), 김원(Br 야철대사장), 이성훈(T 미림), 조광희(태설), 박세형(정량), 장제동(추휼), 조석준(아유타국 대신), 박민구(국신사2), 홍준기(사로국 대신), 김요수아(아도간), 남승모(파도간), 김우중 이은지(상인), 최혁(노비), 김유림(송이), 위너오페라합창단, 최선희가야무용단, 한울어린이합창단

연주: 뉴서울 필하모닉

스탭: 최선희(안무), 김보미 이가은(음악코치), 김현정(무대디자인), 박원광(조명디자인), 우기하(영상디자인), 한승수(의상디자인), 임유경(분장디자인), 양상건(무대감독), 박선미(의상감독), 조광희(무술감독), 최혁 양청휘(조연출)


[사진=봄뫼]포토월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작품 수준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예매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마침 문화와예술에서 초대권을 준다기에 얼른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마침 이날이 출연진도 더 좋은 것 같고 해서 낮에 국립국악원에서 창극 한 편을 보고 전시를 하나 더 본 뒤에 저녁식사를 하고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공연 1시간 전에 가서 티켓을 받으니 2층 A블럭이었다. 숱하게 예술의전당을 왔으나 이 자리에 근처에는 한 번도 앉아본 기억이 없어 자리가 어떨까 궁금했다. 자리에 들어가 앉아 보니 3층 객석의 지붕이 낮게 내려와 음향이 어떨지 걱정이 되었으나 시야는 나쁘지 않았다. 오페라글라스의 도움을 받아야 가수들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자리였으나 역시 체감적으로 3층 객석보다는 많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봄뫼]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본 무대

이 작품은 김해문화재단이 가야 문명의 근거지인 김해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키우기 위해 제작한 작품으로 김해에서의 초연 이후 작품을 더 다듬어 이번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야의 김수로왕과 그 아내인 허황옥 왕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야의 건국에 얽힌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이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 공개되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에서 [라 보엠]을 세련되게 연출한 바 있는 김숙영 연출의 작품이라는 데서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갖기는 했었다. 일단 시각적으로 무대가 훌륭했다. 철의 국가인 가야를 상징하는 거대한 칼의 손잡이가 무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나, 마지막 4막에서 허황옥이 탄 배가 붉은 돛을 달고 가야로 들어오는 모습은 장관이었고 무대와 가수들의 동선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잘 짜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막이 열리면 철을 만드는 작업장이 나타나면서 몇몇 무대 세트가 배튼에 달려 내려오면서 전체의 무대 구조가 완성되는데, 특히 마지막에 거대한 칼의 손잡이가 내려와서 자리 잡는 모습은 아주 멋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가야가 철을 만들어온 과정을 이 무대 세트의 조립 과정을 통해 함축적으로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김수로가 야철대사장과 함께 제철 작업을 하고 철기 제조장에 당나라 사신이 나타나 가락국의 선진 기술을 보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데 이때 한 기술자가 사신의 옷에 흙을 묻히는 실수를 하자 사신은 크게 노하나 마침 자리에 있던 허황옥의 중재로 부드럽게 마무리되고, 이후 모두는 연회장으로 간다. 하지만 김수로는 남아서 주먹밥을 먹으며 제철 기술 향상에 몰두하게 되고 이를 목격한 허황옥은 김수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회의가 있다는 전갈에 김수로가 자리를 뜬 뒤, 허황옥은 자신의 시녀인 디얀시가 사로국의 귀족 석탈해가 밀회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2막에서는 가락국의 주물 예식이 벌어진다. 부족장의 한 사람인 유천간은 가락국 9간 중 으뜸인 신귀간에게 장자인 이진아시를 왕으로 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신귀간은 신중하다. 야철대사장이 철의 제작 방법이 담긴 문서함을 갖고 나오는데 그 안에 비밀문서가 사라진 것이 밝혀지자 난리가 나는데, 이때 석탈해가 비밀문서를 갖고 나타나 이를 김수로가 빼돌려 자신의 나라를 따로 세우려 했다며, 김수로의 수하 미림의 증언을 폭로하고 이로 인해 김수로는 붙잡힌다. 하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긴 허황옥은 자신의 처소에서 디얀시에게 과거 그녀의 아버지와 자신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디얀시를 설득하고, 디얀시는 허황옥에게 자신에게 사랑을 맹세한 석탈해에게 비밀문서를 빼돌려 주었고 석탈해는 김수로의 측근인 미림을 매수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허황옥은 디얀시와 함께 김수로의 죄를 논하는 회의장으로 향하고 여기서 디얀시에게 들은 내용을 폭로한다. 그러나 석탈해는 디얀시의 낮은 신분을 들먹이며 그녀를 멸시하자 디얀시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는다. 자신의 계략이 탄로 난 석탈해는 그 자리에서 디얀시를 칼로 찌르고 이를 막는 허황옥과 칼싸움을 한다. 극적으로 풀려난 김수로는 석탈해를 제압하나 그를 용서하고 사로국으로 추방한다. 김수로를 의심했던 이진아시는 자신의 부덕함을 깨닫고 김수로에게 왕위를 양보한다. 허황옥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김수로는 디얀시를 고향에 장사 지내기 위해 아유타국으로 떠난 허황옥을 기다리며 장터로 나가 백성들과 어울린다. 이때 허황옥이 탄 배가 가락국으로 들어오고, 허황옥을 맞이한 김수로왕은 그녀를 왕비로 맞이한다.


[사진=봄뫼] 전 출연진과 4막의 무대

전체적인 스토리는 베르디나 푸치니, 바그너 오페라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성 단계가 뚜렷했고 갈등 구조와 대결 구도, 반전까지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플롯은 뭔가 허술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제목이 [허왕후]이니 허황옥이 중심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고 주요 사건의 반전을 가져오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허황옥이라는 점에서는 스토리 상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실제 작품에서 허황옥의 존재감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건의 중심에 주인공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 허황옥은 사건이 주변부 인물로 나올 뿐, 사건의 주역으로는 나서지 못했으며 심지어 허황옥과 김수로의 러브스토리도 사건의 핵심에서는 비껴서 있다. 김수로가 단연 이 작품의 중심인물이었고, 스토리를 조금만 손을 본다면 석탈해를 주인공으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탈해는 가락국의 최고 비밀문서를 손에 넣었음에도 왜 자기 나라로 그 비밀을 갖고 돌아가지 않고 가락국에 남아 있다가 체포되는 것인지 그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극의 내용상 문서를 가지고 가락국에 남아 있다고 해서 가락국의 왕이 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럼 뭔가 다른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이유가 나타나지 않았다. 디얀시가 석탈해에게 찔려 죽고 허황옥이 석탈해와 칼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는 이진아시와 그 부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김수로를 무고한 석탈해를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이 장면은 정말 너무 비상식적이었다. 이진아시가 김수로와 크게 대립되는 인물도 아니었는데 죄를 지은 석탈해에 맞서 사우는 허황옥을 도와주지 않고 보고만 있었던 장면은 너무 어색했다. 극중 칼싸움 장면의 액션이 오페라치고는 상당히 좋았으나 이런 모습으로 인해 사실감이 상실되고 장면 전체가 희화화되는 느낌이었다. 또 디얀시가 석탈해에게 비밀문서를 가져다주는 장면도 논리성이 부족했다. 공주라고는 하지만 외국인에 불과한 허황옥의, 그것도 그 시녀에 지나지 않는 디얀시가 어떻게 다른 나라의 일급비밀에 접근하여 그 문서를 탈취하는 게 가능했을지 작품 속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개연성을 부족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사진=봄뫼] 이숙영 연출

이효상 지휘자

김주원이 작곡한 음악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김주원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라는 가곡으로만 알고 있는 작곡가인데 오페라의 관현악곡도 그의 가곡 못지않게 좋았다. 하지만 가곡 작곡가라 오페라 아리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그리 귀에 남는 아리아는 없었던 점은 의외였다. 물론 가곡과 아리아는 발성이나 그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곡의 감성을 살려서 만들만한 장면들이 있었는데도 그런 곡이 나오지 못한 것은 좀 아쉬웠다. 이효상이 지휘한 뉴서울 필하모닉의 연주는 무난했다. 요즘 뉴서울 필하모닉을 자주 보게 되는데 점차 연주가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허황옥 역의 김신혜(S)는 성량이 다소 아쉬웠으나 깨끗하고 지적인 느낌의 소리를 갖고 있어 작중 인물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김수로 역의 정의근(T)은 연기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깨끗한 미성에 힘 있는 목소리가 좋았다. 석탈해 역의 서필(T)도 성량이 좋고 연기도 좋았으나 소리에서 좀 비열한 느낌을 표현해 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진아시 역의 박정민(Br)은 워낙 오페라에 많이 출연하는 가수라 연기며 성량 모두 좋았다. 개인적으로 박정민은 우리말로 된 오페라에서 딕션의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날만큼은 그런 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비교적 명확한 발음을 들려주어서 듣기에 편했다. 이날 가장 인상에 남았던 가수가 디얀시 역의 손가슬(S)이었다. 손가슬은 이날 처음 보는 가수였는데 성량이며 음색, 표현이 모두 좋았다. 앞으로 주목해 봐야 할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봄뫼] 주역 가수들. 왼쪽부터 김원(야철대사장), 이대범(Bs 신귀간), 서필(T 석탈해), 김신혜(S 허황옥), 정의근(T 김수로), 손가슬(S 디얀시), 박정민(Br 이진아시)

[사진=봄뫼]

자막이 제공된 것은 좋았으나 자막에 인물이 표기되지 않아 1막과 2막에서는 도대체 지금 누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좀 답답했다. 이름도 생소한, 잘 모르는 인물들이 많았음에도 자막에 누구의 아리아인지 표기가 되지 않으니 초반에는 극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는데, 이런 점은 다음 공연에서는 수정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지방의 문화재단에서 창작 오페라를 제작하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상당히 수준급의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을 조금 더 보완한다면 김해를 대표할 문화콘텐츠로 온전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글 봄뫼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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