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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주도 뮌헨에서 북동쪽으로 약 2시간 가면 다뉴브강에 면한 도시 레겐스부르크가 나타난다. 강에서 연상되는 왈츠의 가벼운 리듬감을 느끼기에는 매우 둔중하게 다가오는 고풍스러운 도시이다. 고대 로마의 성벽 출입문이 아직 남아 있고,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의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도시이기에 옛 도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시 외곽으로 향하다보면 고즈넉한 강변 높은 언덕 위로 흰빛의 석조건물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존재를 미리 몰랐던 이방인이라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옮겨온 착시감으로 경탄을 금치 못할 거대한 규모이다. 바로 독일의 영웅들을 모시는 '발할라(Walhalla)' 기념관이다. 영화나 게임으로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장엄한 궁전이다. 주신(主神) 오딘의 시녀들인 발퀴레가 전사한 영웅들의 혼령을 인도해 향하는 신들의 하늘 세계이다. 바그너가 중세 게르만 서사시에 위 신화를 더하여 만든 대작 '니벨룽의 반지'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바이에른왕국의 루트비히 1세는 그가 왕세자이던 시절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독일 전역이 유린당하는 참담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왕으로 즉위하게 되자, 기원후 9년 게르만 부족을 이끌고 로마군대를 격파하였던 아르미니우스 이래 출중한 인물들을 기림으로써 독일을 재창조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품고 실현에 옮기게 된다. 위대한 역사상의 영혼들을 한곳에 소집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의회이었기에 레겐스부르크가 대상지로 결정되었다. 1842년 공식 개관하면서 160명의 위인을 흉상과 명판으로 전당 내에 모셨다. 그 기준은 게르만 언어의 사용 여부에 두었으므로 실제 인물들의 활동 지역은 네덜란드, 영국, 심지어 러시아에까지 뻗치고 있다. 그 후 올해 7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헌액되기까지 바이에른학술원의 엄격한 심사와 국무회의 결정이라는 까다로운 절차로 영웅의 총수는 아직 2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오면서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복합공간도 좋고 옛 왕궁터의 복원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의 분단과 피침(被侵)의 역사로 따진다면 우리가 독일에 뒤지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존재로 각인된 극소수의 성군과 성웅만을 내세워 기리기에는 우리 역사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깊고도 넓다. 반만년 기나긴 세월을 거쳐 오면서 시대의 엄혹함과 개인의 취약성을 견뎌내고 이룩한 심오한 사유와 풍부한 정서, 그리고 지극한 인간성을 보여준 여러 인물과 재사(才士)들을 한곳에 모실 수는 없을까? 한민족의 얼을 살리고 자긍심을 높였던 선조들을 함께 마주하고 역사와의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후대의 국민에게 뜻깊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더욱 그 장소가 수도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나라의 격동을 가장 가까이 지켜봐온 북악산의 기슭이라면 '한민족 영웅의 전당'을 마련하기에 더 마땅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김규헌 큐렉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출처 매일경제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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