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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음악회 /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1월 4일(수) 19:00~21:1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층 A블럭 17열 11번 / 전석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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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진웅
판소리 / (심청가) 심봉사 눈 뜨는 대목
- 배일동(소리), 김동원(고수)
경기잡가 / 적벽가
- 이희문(소리), 박범태(장구)
피지 민요(Arr.김애라) / 우리들의 이야기
김민기(Arr.김애라) / 아름다운 사람
한스 히&볼프강 를로프(Arr.김애라) / 두 개의 작은 별
- 윤형주
새미 페인 / (모정)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k
- 김도형
앤드루 로이드 웨버 / (오페라의 유령) All I Ask of You
- 김도형, 김보경
실베스터 르베이 / (모차르트!) 황금별
- 김소현
프랭크 와일드혼(Arr.김애라) / (드라큘라) 그댄 내 삶의 이유
- 김준수
프랭크 와일드 혼 / (황태자 루돌프) 내일로 가는 계단
- 김소현, 김준수
인터미션
미하일 글린카 /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op.5
프란츠 레하르 / (미소의 나라) 나의 온 마음은 당신의 것이오
윤학준 / 마중
빨간머리앤(Arr.김은혜) / (커튼콜) 민들레야
정환호 / 꽃 피는 날
- 조수미(S)
요한 슈트라우스 II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op.314
토마소 알비노니 / 아다지오
- 조수미(S)
리처드 로저스 / (사운드 오브 뮤직) 메들리
에릭 레비 / 챔피언
- 조수미(S), 현음어린이합창단
(앵콜) 박학기 / 아름다운 세상
- 조수미(S), 윤형주, 김소현, 김준수, 김도형, 김보경, 현음어린이합창단
최영선(Cond), KBS교향악단
매년 1월에는 이런저런 공연장과 단체들이 신년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열기 때문에 신년음악회의 홍수다. 나도 1월에만 이 공연을 비롯하여 서울시향,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대원문화재단의 공연이 있고 다소 늦은 2월에도 경기아트센터의 신년음악회까지 모두 여섯 번의 신년음악회 관람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날 공연이 올해 신년음악회의 시작인 셈이다. 이 공연은 문체부 주관의 공연이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신년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가성비 최고의 공연을 자랑하는 한편 초대권 수량이 많아 일반 음악팬들의 입장에서는 티켓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공연이다. 나는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다가 예매시간 10분 전에 티켓 오픈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예매를 했으나 1층과 3층 사이에서 잠깐 주춤거렸던 탓에 세 번의 이선좌를 맞고서야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이 끝나고 주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지하철로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18:20. 버스 정류장에 마을버스가 보이지 않아 그냥 걸어서 예술의전당으로 갔다. 전날 온 문자에 공연 1시간 전에 도착해 달라, 신분증으로 확인을 한다, 주차는 오페라극장이나 국악원에 하라는 내용이 있어서 대통령이 참석하는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차량 통행이 적은 부라문 앞 골목에까지 길게 차가 늘어서 정체를 빚고 있어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도착하니 신분증을 제시하고 티켓을 받은 뒤에는 줄을 서서 공항에서 하는 것처럼 X선 투시기로 짐 검사를 하더니 가방을 열어 뒤져보고 그것도 모자라 주머니까지 샅샅이 수색을 했다. 전 정권에서도 신년음악회 때 대통령이 온 적이 있어 일반 관객들의 불편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 일찍 온 분들의 말에 의하면 그리 까다롭지 않게 검색대를 통과했다던데 나는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고 간 것이 경호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좀 심상치 않다고 보았는지 검색이 다소 빡빡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뒷주머니에 들어있는 전화번호 적힌 종이쪽지까지 펼쳐 보인 긴 검문을 마치고 객석에 들어가 앉으니 생각보다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내 자리는 B블럭에 가까운 통로 옆자리라 시야 장애도 없어 3층 4열보다 자리가 더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 앞쪽은 여느 신년음악회 때와 마찬가지로 꽃으로 장식을 해 놓았고 무대 뒤에는 조명을 설치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굉장히 다양했다. 1부에서는 판소리와 경기민요 등의 국악과 가요, 그리고 뮤지컬 넘버들아 불렸고 2부에서는 관현악곡과 조수미(S)의 노래들로 꾸며졌다. 1부는 대충 넘어가고 2부 공연이나 즐기자는 생각으로 공연을 봤다. 공연 직전에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입장하는데 이날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가 '대통령께서 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계속 박수를 쳐달라'는 멘트를 하기에 좀 놀랐다. 아니 이건 북한도 아니고, 5공화국 시절도 아닌데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이런 멘트를 하나 싶었다. 아나운서 개인의 충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주최 측인 문체부에서 요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냥 "윤석열 대통령님 내외분이 입장하고 계십니다."라고만 하면 알아서 박수 칠 사람들은 다 박수를 칠 텐데 굳이 이런 시대착오적 멘트로 박수를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나운서의 이런 멘트는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만 준다.
첫 곡인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배일동 소리꾼이 불러주었는데 나는 무대에서 처음 접하는 연주자였다. 성량이 엄청나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 대목을 그렇게까지 큰 소리로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마이크의 음량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 보니 가사 전달도 명확하지 못해서 좋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 곡은 국악계의 스타 이희문의 경기민요 <적벽가>였는데 경기민요에 적벽가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내용은 판소리 <적벽가>와 대동소이한 듯. 이희문은 흰색 도포를 입고 나왔음에도 역시나 검은색 킬힐을 신고 나타났고 장구잡이보다 서너 배는 넓은 갓을 쓰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그다음 순서로는 포크송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윤형주가 나와 그야말로 추억의 가요들을 불러주었다. 나의 대학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 것은 좋았지만 윤형주의 노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단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었고 서정성도 잘 살지 못해서 노래가 무미건조했으며 리허설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잘 맞지 않았다. 윤형주의 뒤를 이어서는 네 명의 뮤지컬 가수들이 나와 모두 다섯 곡의 뮤지컬 넘버를 불러주었다. 이날 불린 넘버 중에서는 대체로 솔로곡들보다는 듀엣곡들이 더 좋았다. 뮤지컬 넘버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황금별>은 내가 좋아하는 넘버 가운데 하나지만 김소현의 해석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어서 많이 아쉬웠다. 김준수가 뮤지컬계에서는 막강한 티켓 파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 무대에서 그를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노래를 들어보니 많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1부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 때 로비로 나갔더니 로비에 설치되어 있던 검색 장비들이 다 치워져 있었다. 로비에서 아는 이웃을 두어 분 만났는데 모두 1부 공연에 실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2부는 1부와는 달리 클래식한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들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수미(S)가 부른 노래들인데 조수미의 노래 가운데에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로 부른 곡이라고는 레하르의 오페레타 곡 하나 정도가 전부고, 나머지 곡은 모두 마이크를 들고 가요풍으로 불러서 무척 실망스러웠다. 심지어 우리 가곡 <마중>마저도 가요처럼 불러서 솔직히 좀 뜨악했다. 이후에 부른 곡들이야 모두 가요풍으로 부를만한 곡들이라 더 놀랍지는 않았으나 조수미의 콜로라투라 아리아를 기대하고 온 내 입장에서 이날 공연은 아쉬움을 넘어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연주로 채울 공연이라면 왜 공연장으로 예술의전당을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공연이라면 세종문화회관이 더 적합할 것이고 더 많은 국민들과 함게 하겠다면 고척돔도 어울리는 공연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공연에서 마이크를 쓸 요량이었다면 굳이 어쿠스틱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을 선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 현음어린이합창단원들의 노래는 그냥 그랬으나 그들의 율동은 귀여웠다
신년음악회가 꼭 클래식을 중심으로 공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장이 예술의전당이라면, 당연히 많은 관객들이 어쿠스틱을 중시하는 연주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게 상식이고,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공연인 줄 알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날 공연의 티켓을 예매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조수미가 좋은 연주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듣고 싶은 조수미의 노래는 이날의 조수미가 부른 노래들이 결코 아니었다. 모든 정규 프로그램이 끝나고 앞서 출연한 솔리스트들이 나와서 부른 <아름다운 세상>도 순서만 맞춰 리허설을 한 듯,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앵콜곡까지 다 끝나고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무대 위로 올라와 일일이 출연자들과 악수를 하고 관객들에게 포즈를 취해주어 포토 타임을 가진 건 좋았다. 나를 포함해서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대통령 내외가 이 공연에 왔다는 증명사진을 하나씩은 찍고 싶었을 터. 공식적으로 그런 기회를 줘서 좋았다. 부디 내년 신년음악회는 장소에 걸맞은 성격의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대중음악 중심의 공연을 고척돔에서 한다고 했으면 예매를 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성격의 공연을 보러 예술의전당에 온 것은 아니다. KBS교향악단이 고척돔에서는 교향곡을 연주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의전당에서는 예술의전당에 걸맞은 공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글 봄뫼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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