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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소프라노 김기령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스테이지 커버스토리로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우선 저희 구독자들에게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안녕하세요 소프라노 김기령입니다. 이렇게 스테이지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스테이지는 제가 미국에 있을때도 한국의 음악계 소식을 쉽게 접할수 있어서 즐겨 구독하였었는데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테이지) 우선 대부분 외국 유학생활을 마치면 귀국해서 활동하는게 보통인데 미국에서 오래 계시다가 최근 귀국하신걸로 알고있습니다. 소프라노김기령 선생님의 음악인생의 이야기가 특별할 것 같은데 어떠한가요?
김)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제 소개를 하려고보니 어린시절 모습부터 떠오릅니다. 저는 참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친척들의 모임과 큰 행사때면 어김없이 앞에 나가 노래하였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교내에서 하는 동요콩쿨에 나가 입상하기도 하고 TV에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프로에도 출연했었죠. 이렇게 어린 시절 누가라고 하라고 한적도 없이 마음속에 성악가의 꿈을 품고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원학교에 입학하면서 성악교육을 전문적으로 받게 되었고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대학졸업을 앞두고 국립합창단 오디션을 통하여 국립합창단 정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전문합창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훌륭한 지휘자님들과 많은 연주를 하면서 더 큰 음악세계의 눈이 떠지게 되었고 더불어 개인적인 성악인으로서의 배움의 갈증을 나날이 느끼게 되어 큰 결심을 하고 6년의 국립합창단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뉴욕 맨하튼 음대에 재학하면서 생각만큼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다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또한 그때 옆에서 큰 힘을 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어떻게 보면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해야할까요~. 졸업 후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플로리다 올랜도로 이주하여 두 아이를 기르며 Florida Opera Orlando에서 스튜디오 아티스트를 거쳐 주.조역가수로 활동하였으며 학생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중 한국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께 가까이에 있으면서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이 커져가 고민끝에 작년에 온 가족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
스테이지) 지난 10월27일 귀국독창회를 성황리에 마치셨는데 소감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김) 16년간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 하였을 때는 가족을 위한 생각으로 큰 결심을 하고 들어 왔는데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평생 노래를 하며 지내던 고국에 와서 보니 여전히 음악에 대한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음을 깨닫고 역시 노래는 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치던 예전 제자들이 이미 유학을 마치고 들어와 귀국독창회를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나 늦은 나이에 귀국독창회를 계획을 하려니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스승님들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용기 내어 준비하였고 무대에서도 그 응원을 힘입어 무사히 귀국독창회를 마칠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 인연으로 이번 귀국독창회에 반주로 함께 해주시는 김수민선생님의 조언과 열정적인 리허설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독창회가 되었던 것에 깊은 감사말씀을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스테이지) 필자가 귀국독창회를 객석에서 감상하였을 때 프로그램의 구성이 매 스테이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박진감 넘쳤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뿐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구성하셨는지 궁굼합니다.
김) 모두가 그렇겠지만 특별히 귀국독창회는 최대한 다채로운 모습으로 최대한 장점을 보여 줄 수있는 곡들로 구성하기 원합니다. 저 또한 그런 곡에 대한 욕심으로 다양한 레파토리를 고민하였는데 좀 늦은 나이에 하는 귀국독창회이니 만큼 화려하게 기량을 뽐내는데 목적을 두는 것보다는 저의 삶의 진솔한 모습들이 느껴지는 곡들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선 저의 신앙고백과 같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요한수난곡중 “Ich folge dir gleichfalls” 마지막 스테이지를 흑인영가로 구성하여 저의 삶의 기준이자 푯대인 신앙으로 저의 음악인생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밖에 퀼터의 4개의 어린이 노래, 뿔랑의 가곡, 슈트라우스의 다섯개의 작은 가곡들과 베르디의 로맨틱한 곡들은 제가 애정하는 곡들로 부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어렵지 않은 멜로디로 관객분들도 처음 들으시더라도 편안하게 들으시면서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로 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곡들은 듣기에는 편안하지만 부르는 사람은 한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되는 곡들이긴 하지요 편집장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들으신 것같습니다.
스테이지) 예술가들의 이런 피땀어린 노고가 무대에서 빛을 발하여 관객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 감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선생님 음악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김) 어린시절부터 좋아해서 입문한 성악가의 길이지만 입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어린시절에 저의 노래가 ’기계적으로 부르고 있었다‘라고 발견한 시점이 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활동하면서 가진 독창회에서 “동심초”라는 한국가곡을 불렀는데 이민생활을 하는 저에게도 한국어로 하는 우리 가곡의 의미는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보러오신 관객중 한국분들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도 울컥하였고 후에 그분들께서 우리말로 된 가곡을 듣는 순간 고국과 고국에 계신 부모님생각이 나면서 그리움과 함께 큰 위로가 되어 힐링이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늘 당연히 불러오던 노래가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하늘이 주신 최고의 위로가 아닌가 싶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후에도 매년 연말에 티켓 이벤트로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인들과 또 한국문화를 궁굼해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연주회를 기획하였는데 매년 만석이라 주최측인 Timucua Art Foundation에서도 깊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제 귀국하여 귀국독창회를 통해 한 순간이 아닌 귀국독창회를 준비하는 모든과정 속에서 지난 저의 삶을 돌아보고 또 새로 시작될 저의 새로운 음악인생에 큰 기대감으로 가슴뛰게 음악에 대한 첫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기간이었기에 또다른 저의 음악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테이지) 소프라노 김기령으로써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김)귀국하여 돌아와 보니 예전보다 활발한 가곡연구회의 활동이 흥미롭습니다. 특히나 한국가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마침 한국가곡을 살리는 움직임이 많아 보여 더욱 반갑습니다.
좋은 기회로 지난 11월10일 예술의전당IBK홀에서 한국예술가곡보존회의 정기연주회에 함께 하였었는데 신작가곡들도 많이 선보이는 자리여서 굉장히 의미있던 연주회였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끊임없이 배우기를 원하는 저의 열정을 만족시킬만한 무대를 위해 늘 정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의 마음을 본받아 학생들에게도 음악을 통해 희망을 갖게 하고 더욱 풍요로운 감성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스테이지) 2024년 새해에 본격적으로 활발히 무대에서 소프라노김기령님을 뵙기를 기대하고 스테이지가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말씀 부탁드리며 귀한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심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김)귀국독창회를 마치고 난 뒤에 마음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없이 분주하였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서 되돌아 보며 이제야 저의 귀국독창회가 잘 마쳤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고 실감이 납니다.
앞으로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의 노래가 필요하고 노래를 통해 기쁨을 얻고자 배우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언제든 달려가 마음을 나누는 소프라노 김기령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저의 활동에 많은 애정과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스테이지 구독자 여러분 모두 더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글 발행인 박경준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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