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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음악으로 쓴 인간의 사유/ 음악미학연구회 2024 학술포럼
2024년 8월 21일(수) 15:00-~17:20
세아타워 4층 오디토리움 G열 5번 / 전석 무료
[사진=봄뫼] 세아타워 4층 오디토리움의 학술포럼장 입구
세아 이운형 문화재단은 클래식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든든한 후원자 가운데 하나다. 그런 세아 이운형 문화재단의 모기업인 세아철강이 있는 세아타워에서 매년 오페라와 관련한 포럼이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직장인의 처지에서는 그림의 떡이라 매번 이 행사를 다녀온 음악 동지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올해부터는 나도 이 행사에 가볼 수 있는 형편이 되어 벼르고 있다가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엔 미리 전화를 해서 참석 허락을 받아야 하난 싶었으나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참석하면 되다고 해서 지하철로 합정역에 도착, 10번 출구로 나갔더니 바로 지하에서 세아타워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어 그리로 갔더니 오디토리움으로 연결되는 입구와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직원들이 입구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출입문과 엘리베이터의 작동을 도와주어 아주 편하게, 그리고 헤매는 일 없이 바로 포럼 장소로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사진=봄뫼] 세아타워 4층 오디토리움 로비
세아타워 4층에 위치한 오디토리움 입구 로비는 철강회사답게 여러 가지 철강을 재료로 하는 여러 조형물과 디스플레이로 멋지게 꾸며놓았고 밖이 내다보이는 통창도 비스듬하게 설계되어 있어 멋진 전망과 함께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대단한 공간이었다. 잠시 로비를 구경하다가 행사장인 오디토리움으로 갔다. 입구에서 이용숙 음악칼럼니스트와 마주쳐서 인사를 하고 참석자 명단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니 행사 프로그램북과 생수 한 병을 주었다. 입구에 꽤 많은 재단 직원들이 나와서 관람객들의 편의를 봐주었다. 자리는 자유석이었는데, 좌석이 줄잡아 150석 정도는 되어 보이는 꽤 규모 있는 공간이었고 단차도 꽤 있어서 시야도 매우 좋았다. 시작 전에 주변을 돌아보니 거의 빈자리가 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이 행사를 주최한 음악미학연구회의 회원들과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은 것 같았지만 나 같은 일반 애호가들도 적지 않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사진=봄뫼]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본 무대
14:00가 되자 정확하게 행사가 시작되었고, 음악미학연구소의 대표인 오희숙 서울대 교수의 인사말에 이어 이날 행사의 좌장으로 사회를 맡은 지형주 연세대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이 간단하게 행사의 진행에 관한 설명이 있은 후 바로 발표자들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보는 일반적인 시각은 동화적 외피에 철학적, 도덕적 내피를 입은 선악의 이분법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자라스트로는 빛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밤의 여왕은 어둠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여기서 자라스트로는 프리메이슨의 지도자였던 이그나츠 폰 보른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이는 작곡가인 모차르트는 물론 대본가였던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모두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다. 계층과 인종, 그리고 젠더가 그것이다. 계층의 문제는 왕자인 타미노와 새잡이인 파파게노 사이에 발생하는데, 파미나를 처음 발견한 것은 파파게노였음에도 파미나와 짝이 되는 것은 타미노이며 타미노는 파파게노의 신분을 들어 무시한다.
[사진=봄뫼] 오희숙 음악미학연구회 대표(왼쪽)와 이날 포럼 좌장을 맡은 지형주 연세대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오른쪽)
인종의 문제는 모노스타토스에게서 드러나는데, 자라스트로는 흑인 노예인 모노스타토스가 백인 공주인 파미나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모노스타토스에게 77대를 때리는 형벌을 내린다. 젠더 문제는 밤의 여왕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밤의 여왕은 승려와 타미노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며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죽으면서 자신이 이끌던 집단에 대한 권리를 아내인 밤의 여왕이 아니라 자라스트로에게 넘겨주었다.
이 작품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화려하고 장식음이 많은 데 비해 자라스트로의 아리아는 장식음이 없고, 바흐의 코랄풍을 띠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시대 비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타미노와 자라스트로가 추구한 선은 특정 영역 안에서의 선이었는데 이는 진정한 선이라고 볼 수 없다. 선은 그 가치가 무한히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품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가 추구한 삶은 파파게노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진=봄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대한 발표를 한 이혜진 성신여대 교수
두 번째로는 강지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대상으로 <죽음을 통한 사랑의 구원, 사랑을 통한 생의 구원>이라는 제목의 발표가 이어졌다. 내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된 작품이라 특별히 관심이 갔다. 역시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작품에서는 낮과 밤을 둘러싼 일반적이고 물리적인 연상이 전도되어 밤은 긍정적인 시간으로, 낮은 부정적인 시간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낭만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라이트모티프, 무한선율, 그리고 트리스탄 코드 등 음악의 사용과 작곡 기법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뤄왔다. 실제 이 작품의 서곡에서는 라이트모티프가 묘약 모티프, 갈망 모티프, 비극 모티프, 사랑 모티프 등으로 구분되어 나타나고 중간중간 트리스탄 코드가 등장함으로써 서곡에서 이미 작품 전체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죽음을 통한 사랑의 구원'이라는 형식은 독일 낭만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쇼펜하워의 영향이 큰데 바그너는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진=봄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발표를 한 강지영 한양대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삶의 의지를 궁극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죽음을 향한 진정한 동경이라는 것이 쇼펜하워의 핵심 사상이라고 설파했다.
프로이트 역시 본능과 성적 쾌락이 합쳐진 삶의 본능인 에로스보다는 공격적이고 파괴적 요소가 합쳐진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가 더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원히 채워지지 않고 시들어가는 욕망 끝에 삶의 의지를 부정하고 체념함으로서 구원을 받는다는 쇼펜하워와는 달리 바그너는 에로스를 긍정하고 강조함으로써 열광적 기쁨과 황홀의 상태를 가져오는 사랑을 통해 완전한 진정에 이르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어서 두 발표에 대한 토론자과 참관자들의 질의와 그에 대한 발표자들의 대답이 이어졌는데, 발표 때와는 달리 메모를 하지 않았고 질의응답도 매우 학술적인 내용이라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토론이 끝난 뒤에는 약 15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재단 측에서 거의 10여 가지의 과자를 준비해 주어 나도 서너 개의 과자를 가져와 당 충전을 했다.
[사진=봄뫼] 1부 발표에 대한 토론. 왼쪽부터 지형주 죄장, 오혜진 토론자, 강지영 발표자, 이혜진 발표자
2부에서는 먼저 박유미 피아니스트 겸 영남대 객원교수가 벨러 버르톡의 <푸른 수염의 성>을 대상으로 <어둠 속 비밀의 소리들, 밤의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매우 흥미진진한 발표였는데, 사실 이 시간에는 오는 11월의 세인트마틴 인 더 필즈의 공연 예매가 있었기 때문에 모바일로 그 티켓을 예매하느라 제대로 강의를 듣지 못했다. 티켓 오픈 시간에 바로 들어갔으나 계속 오류가 나고 겨우 자리를 잡으면 이선좌가 뜨고 해서 거의 발표 시간 내내 예매와의 전쟁을 치렀다. 아무튼 매우 부실하지만 기억나는 대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푸른 수염의 성>은 버르톡의 단막 오페라로 원작은 샤를 페로의 동화이나 그 내용은 1400년대 질 드 레 남작의 실화에서 유래되었다. 금지된 비밀의 방, 아내 살해의 모티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는 유럽에서 유명한 까닭에 버르톡 이전에도 1789년 앙드레 그레트리가 <푸른 수염 라울>이라는 제목으로, 1866년 자크 오펜바흐가 <푸른 수염>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907년에는 폴 뒤카가 <아리안과 푸른 수염>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오페라를 창작한 바 있다.
이 작품은 푸른 수염(Bs, 또는 Bass Br)과 그의 아내 유디트(S 또는 Ms) 단 두 명만 등장하는 오페라로 연주 시간은 1시간 남짓 된다. 푸른 수염은 새 신부가 된 유디트를 자신의 성으로 데려오고 유디트는 깜깜한 성 안에서 7개의 잠겨진 문을 발견한다. 유디트는 푸른 수염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결국 유디트는 7개의 문을 차례로 여는데 성공하고, 결국 마지막 일곱 번째의 문을 열어 그 안에서 푸른 수염의 전처들의 시신으로 이루어진 빙산을 보게 되며 유디트도 그들처럼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몇 가지 특징으로는 먼저 페미니즘의 이슈를 들 수 있는데, 남성 대 여성의 젠더 이원론과 남녀의 권력관계 구도가 내재되어 있다. 말하는 듯한 자유로운 리듬의 팔란도-루바토 어법을 완성했으며 음색과 음향, 조성, 조명을 통한 상징성을 확보했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버르톡은 액션이 없는 두 인물의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유의 '밤의 음악'을 사용하는데, 시골의 밤에 들리는 자연의 소리, 조용하고 번져나가는 듯한 클러스터 소리, 불협화음의 오스티나토, 글리산도의 빠른 움직임, 으스스한 공간감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밤의 음악의 특징적 요소들은 1940년대 버나드 허먼이 히치콕 영화음악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한 바 있다. 소위 히치콕 코드라는 것이 그것으로, 일종의 라이트모티프와 유사한 주제 변형 기법이며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는데, 1950년대에는 많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20세기 작곡가들의 기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사진=봄뫼] 벨러 버르톡의 <푸른 수염의 성>에 대한 발표를 한 박유미 영남대 객원교수
이날의 마지막 발표자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예림이 에두아르도 렉 미란다의 <람페두사>라는 오페라를 대상으로 <전자음악으로 구현된 신적인 목소리>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람페두사>는 나는 물론이고 이날 이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공자들도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작품이었다. 역시 기억나는 대로 발표 내용을 요약해 본다.
이 작품은 2018년 작곡되어 2019년 2월에 초연된 작품으로 세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템페스트>의 프리퀄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란다가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람페두사는 실제 튀니지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중간의 지중해 상에 위치한 곳으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는 난민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섬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사는 곳,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음악이 있는 곳, 그리고 사이렌이 온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보브라고 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언어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전자음악, 실사와 애니메이션, 고대 그리스의 합창,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시코락스(Ms)는 스페인의 마녀사냥으로 인해 도망하다가 람페두사에 정착한 인물로 아리엘에게 신비한 음악의 힘을 배운다. 아리엘(무용수)은 신비한 음악적 힘을 가진 재로 사이렌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 칼리반(Br)은 시코락스의 아들로 섬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는 악인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무대 의상도 독특한데 시코락스는 마녀이자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므로 비현실적인 의상을 착용하며, 아리엘은 신비한 음악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옷에 센서를 부착하여 특정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게 한다. 칼리반은 반인반수, 또는 반인반어의 괴물로 해양생명체를 묘사한다.
<람페두사>는 공연시간 26분가량의 3막 오페라로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섬에서 정신을 차린
시코락스는 보브 언어로 노래하는 아리엘에게 매혹당한다. 아리엘은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온 것인지 물어보면서 계속해서 시코락스를 유혹한다.(1막) 칼리반은 10대가 되었지만 아리엘의 영혼과 노래를 감지하지 못한다. 시코락스는 마침내 아리엘과 같은 신비한 힘을 갖게 되고 복수를 향해 나아간다.(2막) 아리엘은 시코락스의 능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시코락스에 의해 나무더미에 갇히게 된다. 시코락스는 힘을 갖고 육지로 나아간다.(3막)
아리엘의 초월적인 힘을 갖는 음악은 전자음악으로 표현되고 시코락스는 비록 유혹에 넘어가는 인간이지만 아리엘의 음악을 배움으로써 신적이 능력을 부여받게 되며, 칼리반은 전자음악으로 표현되는 아리엘의 음악을 듣지 못하는 음악적 힘이 없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는 코러스가 등장하는데, 이 코러스는 관찰자이면서 해설자 역할을 하며 때로는 극중 인물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로 이루어진 기존의 오페라에 이야기를 더했으며, 거기다 전자음악과 영상, 그리고 새로운 언어라는 요소를 첨가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진=봄뫼] 에두아르도 미란다의 <람페두사>에 대한 발표를 한 김예림 서울대 음악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발표가 모두 끝나고 역시 이어서 두 발표에 대한 토론자과 참관자들의 질의와 그에 대한 발표자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메모를 하지 않았고 질의응답도 매우 학술적인 내용이라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다만 <람페두사>와 관련해서 전자음악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발표자가 전자음악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의 유혹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이 작품에서는 전자음악을 듣지 못하는 칼리반을 악역으로 설정해 전자음악을 일반적인 음악보다 우월한 개념으로 설정했다고 본다고 했는데 공감이 갔다
[사진=봄뫼] 2부 발표 대한 토론. 왼쪽부터 지형주 죄장, 원유선 토론자, 김예림 발표자, 박유미 발표자
3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였는데, 대부분이 몰랐던 내용들이어서 듣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끝나고 나오는데, 오희숙 교수가 내년에도 또 와달라고 이야기해 주어서 고마웠다.
글 봄뫼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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